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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사회

조선왕조실록-태조 왕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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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는 어떠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조실록 태조 1년 7월 17일(1392년)

태조가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7월 12일에 공양왕(고려 마지막 왕)이 장차 태조의 집으로 가서

술자리를 베풀고 함께 잘 지내고자 격식을 차렸는데 시중 '배극렴' 등이 왕대비에게 말했다.

"지금 왕이 정신이 희미하고 아둔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과 백성의 주인이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위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남은'이 '정희 계'와 함께

교지를 가지고 북천동 사좌 궁에서 교지를 선포하였고 공양왕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명령을

듣고 말하였다.

"내가 원래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어리석고 둔하여 일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른 일이 없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울었다.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가서 모든 신하들이 국새를 받들어 왕대비전에 두고 모든 명령을 받들어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였다. 

 7월 13일에 대비가 교지를 선포하여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가서 실록 태조 1년 7월 17일(1392년)

태조가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7월 12일에 공양왕(고려 마지막 왕)이 장차 태조의 집으로 가서

술자리를 베풀고 함께 잘 지내고자 격식을 차렸는데 시중 '배극렴' 등이 왕대비에게 말했다

"지금 왕이 정신이 희미하고 아둔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과 백성의 주인이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위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남은'이 '정희 계'와 함께

교지를 가지고 북천동 사좌 궁에서 교지를 선포하였고 공양왕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명령을

듣고 말하였다.

"내가 원래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어리석고 둔하여 일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른 일이 없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울었다.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가서 모든 신하들이 국새를 받들어 왕대비전에 두고 모든 명령을 받들어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였다. 

7월 13일에 대비가 교지를 선포하여 태조를 감록 국사(지금의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다. 16일에는 대소 신료와

은퇴한 고위 신료 등이 국새를 받들고 태조의 집으로 가는데 마을 골목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출처 : sbs 드라마육룡이 나르샤

대사헌 '민개'는 홀로 기뻐하지 않으면서 얼굴빛에 나타내고. 머리를 기울이고 말하지 않아서 '남은'이

'민개'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태조가 말렸다.

이날 마침 집안의 여러 부인들이 태조와 '강비'를 알현하고 물에 만 밥을 먹는데, 여러 부인들이 모두

놀라 두려워하여 도망갔다. 태조는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해 질 무렵에 이르러 '배극렴'

등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서 국새를 마루 위에 놓았다.  조카인 '이천우'를 붙잡고 겨우 밖으로 나오니

신하들이 늘어서서 북을 치고 만세를 불렀다. 태조가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자 '배극렴'을 비롯한

다른 신하들이 왕위에 오르기를 간청하였다.  

태조 이성계

하지만 태조는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로부터 제왕의 일어남은 하늘의 명이 있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나는 실로 덕이 없는 사람인데

어쩌 이를 감당하겠는가?" 

대소 신료들이 호위하고 물러가지 않으면서 왕위에 오를 것을 간청하니 태조는 마지못하여

수창궁으로 향했다. 백관들이 궁문 서쪽에서 줄을 지어 영접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는 말에서 내려걸어 들어가 왕위에 오르는데 어좌에 앉지 않고 서서 신하들의 하례 인사를 받았다.

육조의 판서 이상의 관원에게 명하여 전각 위에 오르게 하고 말하길

"내가 수상이 되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어찌 오늘날 이 일을 볼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내가 만약 몸이 건강하다면 말을 타고 피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이니 경들은 마땅히 각자가 마음과 힘을 합해 덕이 적은 사람을 보좌하라" 하였다.

이에 고려 왕조의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료들에게 예전대로 정무를 보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